<석탄에 깔려 4명이 무참하게 사망> 1927년(쇼와 2년) 5월 27일 자 나가사키 니치니치 신문
하시마 탄광 내에서 5월 24일 오전 오후 두 번에 걸쳐 대규모 분탄 추락이 발생하여 4명이 사망했다. 4명 중 1명이 조선인 갱부.
나가사키 니치니치 신문 (1927년 <쇼와 2년> 5월 27일 자)
자료제공:국립 국회도서관
- Author
Page 1
석탄에 깔려
4명이 무참하게 사망
하시마 탄광에서 오전 오후 2번의 춘사 (椿事)
모두 숨이 멎어 있었음
24일 오전, 오후 2번에 걸쳐 나가사키항외의 하시마 탄광 내에서 분탄이 떨어져 작업 중인 갱부 4명이 이에 깔려 무참하게 목숨을 잃는 춘사 (椿事)가 있었다.
니시소노기군 다카하마무라(西彼杵郡高濱村) 하시마 탄광 갱부 합숙소의 갱부 오노하라 야스오(小野原安夫, 38)는 히로시마현 다카다군 요시다마치(広島県高田郡吉田町) 도모키치 형제 당시 탄광 사택 30호 3층에 거주하는 갱부 다케나가 산로쿠(竹永賛六, 31)와 함께 3교대의 1번방으로서 24일 오전 5시경에 동갱 제4 갱에 입갱하여 오전 8시 25분경에 갱내 우측 5편 10호의 채굴장에서 천장 틀을 넣는 작업을 하던 중, 갑자기 큰 소리와 함께 분탄 약 30함가량이 떨어져 밑에 깔리게 되었고 2명의 생사가 불명하게 되었다. 그 신고를 받은 동갱의 리키타케(力武) 청원 순사는 곧바로 갱무원과 그 외의 몇 명과 함께 급히 현장으로 출동하여 구조에 힘썼고, 9시 15분경에 오노하라를, 30분경에 다케나가를 구출하였으나 2명 모두 입과 코가 시커먼 분탄으로 막혀 질식한 상태였기 때문에 사무소로 이송하여 오오카(大岡)탄광의 의사가 응급조치를 취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구조요청의 목소리 점점 약해져
마침내 들리지 않아
제4 갱에서 2명의 변사자가 발견된 당일 오후 제3갱 내에서 또다시 2명의 갱부가 사망하였다. 조선 경상남도 진주군, 당시 하시마 탄광 사택 안도 사부로(安藤三郎)댁의 조선인 갱부 강만영(姜萬榮, 34)과 효고현 사요군 사사키무라(兵庫県佐用郡佐々木村), 당시 동갱 사택 30호의 갱부 이노우에 세이스케(井上淸助, 33) 이상 2명은 24일 3교대의 2번방으로서 제3 갱에 입갱하여 채탄 작업 중이던 오후 0시 반경에 천장에서 분탄이 우수수 소리를 내면서 떨어져 내렸고, 이에 큰일이 났다며 그 자리에서 피난하려고 했지만 큰 소리와 함께 탄차 50~60대 분량의 분탄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려와 그 밑에 깔려버렸다. 파묻힌 2명은 괴로워하며 “살려줘~”라고 십수차례 외치며 구조를 요청했고, 이 비명을 들은 갱부 조장 외 여러 명이 달려와 구출하는 사이에 “살려줘”라는 목소리가 점차 작아졌고 끝내 들리지 않게 되었다. 일동은 필사적으로 분탄 제거에 힘썼고 약 20분 후에 만영을, 2시 50분경에 세이스케를 구출했지만 둘 다 분탄으로 입과 코가 가득 막혀 있었고 전신 여러 곳에 상처를 입은 채 숨이 멎어 있어 오오카 의사가 응급조치를 취했으나 아무 효과도 없이 끔찍한 죽음을 맞이했다.
(쇼와 2년 5월 27일)